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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행_국립중앙박물관 3층 세계문화관 중국, 일본, 세계도자기 (National Museum of Korea)

2021. 4. 21. 00:00전국 여행

오늘은 국립중앙박물관의 세계문화관

중국, 일본, 세계도자기실을

리뷰 하겠습니다.


이 리뷰를 마지막으로 국립중앙박물관

리뷰는 끝입니다!!

 

사진 찍는다고 고생도했고..

글 정리한다고도 생각보다 내용이 많아서

고생을 많이했는데요. 드디어 고지가 보이네요.

 

 

 


 중국실 

중국실입니다.

 

중국은 황하 문명을 기반으로 성장했으며,

광활한 영토에 여러 민족의 흥망성쇠가 거듭

다채로운 문화가 전개되었다.

 

 

 

 

중국 고대문화:

중국 고대 문명은 신석기시대의 채도와 옥기

청동기시대의 갑골문 청동기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채도는 정착 생활과 농경이 시작되면서 생산

도기 표면에는 동물무늬나 기하학무늬 등이 표현

 

옥기는 지배계급의 상징물로서

주술적인 의미를 가졌으며 장신구 구실을 했다.

 

 

 

 

당대의 금은기:

당대에는 수준 높은 금속 제조 기법으로

완, 합, 배, 반, 호, 등 다양한 금은기를 생산

궁정과 귀족 계층에서 널리 사용했다.

 

실크로드를 통해 서아시아 문화가 유입되어

당나라 사람들 사이에서 이국풍이 인기를 끌면서

다양한 형태의 금은제 그릇이 제작되었다.

 

손잡이가 있는 잔, 굽다리 은잔 등은 서아시아

그릇에서 영향을 받아 제작된 것들이다.

 

 

 

 

조상비: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이래 새로운 형태의

조형물인 조상비가 등장했다.

중국의 비가 지배계층을 위한 것이었다면

조상비 제작에는 지배계층뿐만 아니라 민간인들도

발원자로서 참여할 수 있었다.

 

이러한 조상비는 마을 입구, 주요 교차로, 사원 등

대외적이고 공적인 장소에 주로 세웠으며

조상의 안녕을 기리고 공덕을 쌓는 역할을 했다.

 

이처럼 조상비는 당시 유행했던 불교 도상에

발원자의 염원을 담아 이들의 신앙과 바람을

대외적으로 널리 알리고자 했다.

 

 

 

 

당삼채말 (당 618년~907년)

 

 

 

채색자기:

경덕진요로 대표되는 명청대 자기는 원대의

청화, 유리홍 등의 장식 기법을 바탕으로 발전

특히 주목할 만한 기술적 성취는 유약 위에

채색을 가하는 채색자기의 탄생이다. 

 

 

 

 

칠기:

중국 칠기공예는 일찍이 7천여 년 전

신석기시대부터 존재했다.

이후 수천 년간 끊임없이 발전하여 

채회, 전칠, 상감, 조칠, 금칠 등의 다양한 기법을

선보이며 중국 전통문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

 

 

 

 

세계를 매혹시킨 청화백자:

경덕진의 청화백자는 원대 14세기부터 

도약적인 발전을 이룬다.

 

무역의 경로인 실크로드를 따라 코발트가 수입

경덕진의 질 좋은 백자원료와 유약의 생산으로

아름다운 청자백자가 제작되었다.

명청대에는 전 세계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법화자기 인물무늬 항아리

명 (1368~1644년)

 

 

 

 

명 청 회화:

명청대에는 송원대의 전통회화를 계승하면서

다양한 화퐈와 화법이 새롭게 등장한다.

 

명대초기에는 송대 회화에 전통을 따르는 절파가

궁정과 민간에서 활약했고, 중기 이후에는 원대의 

문인화를 계승한 오파가 소주 지방을 중심 활동

 

청대 초기에는 사왕이 문인화의 정통을 잇는 반면

반청 의식을 지닌

네 명의 승려화가가 개성적 화법 창조

 

청대 중기이후에는 주요 활동 지역의 이름을 딴

양주팔괴, 안휘파, 금릉팔가, 상해화파 등의

화파별 화가들이 활발히 활동한다.

 

또한 서양화법이 소개되어 전통적 중국화 재료에

서양화의 투시법, 명암법을 구사하는

동서 융합의 화풍이 출현하기도 한다.

 

 

 

 

반송재:

반송재는 국립중앙박물관 제9대 관장

김홍남 박사가 세계문화관 개관을

기념하여 헌정한 전시실입니다.

 

중국 청말(18-19세기) 학자의 집을 서재와

내실을 중심으로 재현, 그의 중국 수집품을 배치

 

 

 

경태람동향로

 

 

 

중국 유물같은 경우는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어서 새롭지는 않았는데

마지막에 있는 반송재가 기억에 남더라고요.

 

4계절을 표현한건지? 눈도오고 벚꽃도 날리고

디스플레이에 표현된 4계절이 인상적이었고

진짜 누가 살법한 중드에서 봤던 느낌 그대로

서재를 만들어서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일본실 

세계문화관 일본실입니다.

 

전에 방문했을 때 저는 너무 힘들어서

3층 세계문화관은 못갔었는데 

제 자매는 그때 3층 준비중인관 제외하고

일본실이랑 중국실 등을 갔었는데

 

이번에 세계문화관으로 재단장하면서 

일본실도 내용이랑 유물도 바꼈다고 하더라고요.

전에 힘들어도 따라가볼걸 ㅎㅎ 후회

 

확실히 박물관도 한번씩 주제 바꿔서 

재단장이 필요한 것 같아요. 

 

 

 

 

칼:

일본 칼의 역사는 야요이 시대에 대륙에서

칼날이 직선인 큰 칼이 전해지며 시작되었다.

 

일본도라고도 불리는 다치는 헤이안 시대 후기인

11세기에 처음 등장했는데, 칼날이 약간 굽은

곡석 모양의 긴 칼로 무사들이 허리에 차로 다녔다.

 

 

 

 

갑주:

일본의 갑주는 몸을 감싸는 갑옷 요로이와

투구 가부토로 이루어 진다.

헤이안 시대부터 가마쿠라 시대에 걸쳐 사용했던

상급 무사용 갑주 오요로이는 본래 말을 타고

화살을 쏘는 기마 무사가 입었다.

 

남북조 시대 이후에는 가볍고 입기 쉬운

도마루와 하라마키를 입게 되었다.

 

대규모 전투를 겪으며 스페인, 포르투갈 등

서양 갑주의 영향을 받으면서 무로마치 시대

말기에는 도마루보다 방어 성능을 높인

도세구소쿠라는 갑옷이 나타났다.

 

 

 

 

무사의 악극, 노:

노는 가면을 쓴 배우가 악기 연주에 맞춰

노래와 연기를 하고 춤을 추며 진행되는

일본의 전통 가면극이다.

 

노는 나라시대에 중국에서 전해진

가무극에서 영향을 받아 생겨났다.

 

 

 

 

낙중낙외도:

낙중낙외도는 일본 교토의 중심부와 교외 풍경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묘사한 병풍이다.

 

일본인들은 고대 일본 정치와 문화의 중심이었던

교토를 중국 수도의 이름을 본떠 

교토의 동쪽을 낙양, 서쪽은 장안이라고 불렀다.

 

이 중 서쪽이 일찍 쇠퇴하여 낙양의 낙이

교토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그래서 교토를 그린 그림을

'낙중낙외도'라고 부른다.

 

 

 

 

벗풀, 당초무늬 마키에 가마:

검은 옺을 칠하고 금가루를 뿌리는 마키에

기법으로 벗풀과 덩굴무늬를 그려 넣은 가마이다.

 

벗풀무늬는 지금의 히로시마시에 근거지를 두었던

다이묘모리 가문의 상징이었으므로 

이 가문의 여성이 이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혼례도구:

혼례도구는 여성이 혼인할 때 가져가는 

모든 생활 도구를 가리킨다. 

 

놀이 도구, 서랍장, 화장품, 문방구, 의류 수납 도구

음식기 수납 도구 등이 있다.

 

 

 

 

마지막에 나올 때 쯤에 찍은 도자기들

색상이 너무 예뻐서 찍었어요.

 

확실히 중국, 일본 같은 아시아권이고

일본도 중국에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런지 

각 나라 특유의 느낌과 디테일이 다른 것 같아요.

 

그리고 많이 접했던 아시아권 유물들도

이렇게 주제를 달리해서 전시하니

더 흥미롭고 재밌었던 것 같아요.

 

 

 


 세계도자기실 

세계도자기실은 세계 여러 문화가 만나고 발전하는 과정을 동서교류의 대표적인 산물인 도자기를 매개로 보여주기 위해 마련하였다.

중국은 기원전부터 유약을 바른 도자기를 만들었는데 당나라 때에는 이슬람 지역을 대상으로 도자기 수출 16세기 무렵 유럽인들은 바닷길을 개척해 아시아에 도착하고 동양의 문물을 접하게 되었다. 그중 도자기는 유럽인들의 이국적 취향을 만족시켰고 유럽 왕실과 상류층은 동양 자기를 앞다투어 수집했고 이에 유럽 여러 나라는 동인도 회사를 설립하였다.

 

중국 자기에 자극을 받은 유럽인들은 시행착오 끝에 18세기 초에 드디어 자기를 직접 생산하는데 성공했다. 결국 17~18세기에 도자기에서 촉발된 동양풍의 유행은 서양 자기 탄생의 원동력이 되고 산업혁명과 맞물려 자기 생산의 중심이 동양에서 유럽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이 전시실은 네덜란드 프린세스호프 국립도자기박물관이 소장한 동양 무역자기와 유럽 초기 자기를 빌려왔다.

2022년 11월까지 전시한다!

 

 

 

 

이슬람 양식 중국 백자 청화 주전자:

이슬람 상인들은 그들의 취향이 반영된

자기를 중국에 주문하면서 페르시아산

코발트를 중국에 제공하였고, 

중국 청화백자 탄생의 원동력이 되었다.

 

 

 

 

징항대운하를 따라 

칭위안에 중국 각지의 물산이 모여들고....

 

 

 

일본 국제무역항, 나가사키항:

이 그림은 19세기 나가사키항을 하늘에서

내려본 듯 조망한 모습이다.

 

당시 나가사키항을 일본에서 유일하게

외국인에게 개방된 무역항이었다.

그림 가운데 네덜란드 국기를 단 상선 2척이

보이고 배의 왼편으로 외국인들의 거주지

겸 상관이 있었던 부채꼴 모양의 데지마가 보인다.

 

 

 

커피포트 왼쪽:

17세기 후반 커피가 유럽에 소개되고

애용되면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유럽의 금속 주전자를 모방한 커피포트를

일본에 주문하였다.

 

 

커피포트 오른쪽:

19세기 후반 파리의 삼손 제작소에서

일본 이마리 커피포트를 모방하여 만든 것이다.

 

 

 

임진왜란 때 일본이 우리나라에서

도자기 장인을 많이 납치해서 (대표 인물, 이삼평)

이후 일본에서 도자기를 만들어서 

외화벌이가 쏠쏠했다고 이야기들 듣고

저걸 보니 그닥 좋아보이진 않네요...

 

 흑우도 마찬가지고 좋은거 다 가져가거나

말살해버리고 토종개들이나 해양동물

호랑이 등등 너무 많아서 헤아릴 수 없네요.

여튼.. 우리나라 장인들에게서 전해진 기술..

아픈 역사도 역사지만 좋아보이지만 않네요.

 

 

 

 

중국 자기를 모방한 델프트 도기:

유럽의 도기는 8-15세기 남유럽의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한 이슬람의 주석 유약 도기 제작

기술이 유럽에 전파되면서 각국에서 생산되었다.

 

처음에는 스페인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도기를 만들었고, 16세기에 이탈리아 장인들이

네덜란드에 기술을 전하여 델프트에서 도기 생산

 

17C 델프트 장인들은 중국 청화백자에 열광하는

유럽 자기 시장을 보고 중국 자기를 닮은 도기를

만들어야겠다 판단했고, 결국 제작에 성공했다.

 

 

 

 

도자기가 중국에서 시작되어

현재는 전세계로 퍼져서 거의 모든 인류의

필수품이 된 지금!

 

도자기의 역사를 한 눈에 알 수 있어서

유익하고 재밌었던 시간이었어요.

 

 

그리고 처음에 수입하고 모방하다가

각 나라 본연의 스타일로 발전해나가고

그런 과정들이 재밌었어요.

 

 

그리고 저는 코발트 색상을 가미한 도자기가

특히 제일 눈이 가고 마음에 들었어요.

 

 

 

 

세계도자기실을 마지막으로

국립중앙박물관 포스팅을 마무리 짓겠습니다.

우와우와 진짜 내용도 방대하고 

진짜 타이핑친다고 고생많이 했는데.. ㅋㅋ

 

누가 알아주는건 아니지만 

혼자서 좋아서 하는거지만 

이런 박물관 리뷰는 확실히 다른 제품보다

많이 힘든건 사실이네요. 

 

하 또 전쟁기념관이 남아 있는데 

걱정 스럽스럽합니다. ㅎㅎㅎ

또 여유롭게 잘 해봐야지용 ㅎ_ㅎ 헤헤